썸이 너무 오래 갈 때, 관계를 정의하기로 제가 정한 기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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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6-08-29 06:24본문
연락은 매일 했어요. 주말마다 만났고, 손도 잡았고, 다른 사람 얘기가 나오면 둘 다 티 나게 신경 썼어요. 그런데 딱 그 상태로 넉 달이 지났어요. 사귀자는 말도,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요. 친구가 "그래서 둘이 사귀는 거야?"라고 물었을 때 저는 대답을 못 했어요. 모르겠더라고요, 진짜로.

편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, 사실은 미루고 있었다
처음엔 이게 편해서라고 생각했어요. 사귀자는 말을 안 해도 이미 연인처럼 지내니까, 굳이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고요.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어요. 편한 게 아니라 미루고 있었던 거예요. 물어봤다가 상대가 "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"라고 하면 지금까지의 시간이 다 무안해질까 봐요. 정의하지 않으면 적어도 거절당한 건 아니니까, 그 애매함 안에 계속 머물렀던 거예요.
문제는 이 애매함이 한쪽에만 유리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거였어요. 저는 이미 다른 사람을 안 만나고 있었는데, 상대는 "우리가 뭐 정한 사이는 아니잖아"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. 소개팅 다음 날 연락의 온도를 재던 때랑 비슷한데, 그때는 하루이틀이었다면 이번엔 넉 달이었다는 게 달랐어요.
연락 패턴만 보고 마음을 판단하면 틀린다
저는 한동안 연락 빈도로 마음을 가늠했어요. 답장이 빠르면 좋아하는 거고, 늦으면 식은 거라고요. 근데 이건 되게 부정확한 기준이더라고요. 연락 빈도가 다른 게 애정 차이가 아니라 사용법 차이일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, 연락으로 관계를 정의하려던 걸 그만뒀어요. 매일 연락한다고 사귀는 사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, 연락이 뜸하다고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어요.

제가 물어보기로 결정한 세 가지 기준
결국 저는 얼마나 오래 만났는지가 아니라 다른 걸 봤어요.
- 둘 다 다른 사람을 안 만나고 있는가 — 말은 안 했어도 실질적으로 이미 배타적인 관계라면, 이름만 없을 뿐 이미 사귀는 거예요. 이걸 계속 미루는 건 상대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제 불안을 미루는 거였어요.
- 미래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가 — 다음 달, 내년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이라면 정의만 안 됐을 뿐 관계는 이미 진행 중인 거고요.
- 애매함이 저를 불안하게 만드는가 — 이게 제일 컸어요. 애매한 상태가 편안하면 급할 이유가 없지만, 저는 매번 확인받고 싶어서 초조했거든요. 불안이 계속되는 애매함은 관계가 아니라 대기였어요.
세 개 다 해당되는데도 안 물어보고 있다면, 그건 상대를 배려하는 게 아니라 제가 겁먹고 있는 거더라고요. 저는 이 세 가지를 종이에 적어놓고 하나씩 체크했어요. 막상 적어보니 세 개 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다는 표시가 되어 있었고, 그런데도 왜 안 물어봤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어요.
말을 꺼낸 다음, 답보다 먼저 본 것
저는 결국 물었어요. "우리 지금 무슨 사이인 것 같아?" 정확히 이 문장으로요. 장소를 고를 때도 고민했어요. 술자리처럼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는 곳 말고, 낮에 카페처럼 서로 말을 정확히 듣고 정확히 답할 수 있는 곳을 골랐어요. 상대가 잠깐 멈칫하긴 했는데, 그 멈칫함 자체가 답이었어요. 즉시 "당연히 사귀는 거지"라는 말이 안 나온다는 건, 그 사람한테는 아직 정의할 준비가 안 됐다는 뜻이더라고요.
그 순간에는 서운했는데, 지나고 보니 오히려 다행이었어요. 넉 달을 더 애매하게 보냈다면 저는 이미 확신을 갖고, 상대는 아직 저울질하는 상태로 관계가 계속 어긋났을 거예요. 고백 타이밍을 재던 것도 결국 같은 문제였어요. 마음을 먼저 확인하지 않고 시간만 채우면, 그 시간이 관계를 대신 정의해주지 않아요.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, 누군가 먼저 물어야만 답이 생기는 거였어요.

정의된 다음에야 보이는 것들
사귀기로 한 다음에 달라진 건 생각보다 컸어요. 그전엔 안 하던 얘기, 예를 들면 서로 친구들에게 언제 소개할지 같은 것도 자연스럽게 나왔어요. 예전에는 "우리가 그런 걸 얘기할 사이인가" 하고 스스로 검열했는데, 정의가 되고 나니 그 검열이 사라졌어요. 애매한 상태에서는 못 물었던 것들이, 정의가 되고 나니 물어볼 수 있는 것들로 바뀌더라고요. 서로의 하루를 더 구체적으로 묻게 됐고, 다음 주 약속을 잡을 때도 눈치 보지 않고 먼저 제안하게 됐어요.
썸이 길다고 나쁜 건 아니에요. 다만 그게 편해서 길어지는 건지, 겁이 나서 길어지는 건지는 스스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. 저는 그 구분을 못 하고 넉 달을 흘려보냈고, 되돌아보면 그 시간의 절반은 안 물어봐도 될 이유를 찾는 데 썼더라고요. 지금 누군가와 이름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, 얼마나 오래됐는지보다 그 세 가지 기준을 먼저 확인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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