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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인과 떠난 첫 여행에서 부딪힌 것들 — 저희가 다음부터 다르게 정한 것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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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회 작성일 26-08-30 06:24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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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귄 지 반년쯤 됐을 때 처음으로 2박 3일 여행을 갔어요. 숙소도 예쁜 데로 골랐고, 날씨도 좋았어요. 그런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저희 둘 다 말이 없었어요. 싸운 건 아니었는데, 뭔가 서로 좀 지쳐 있었어요. 평소엔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, 24시간 붙어 있으니까 안 보이던 게 다 보이더라고요.

거실에서 캐리어를 함께 정리하며 여행을 준비하는 두 사람

일정 스타일이 이렇게까지 다른 줄은 몰랐다

저는 시간표를 짜는 편이에요. 몇 시에 어디 가서 뭘 먹고, 그다음엔 어디로 이동할지 미리 정해두면 마음이 편해요. 그런데 상대는 정반대였어요. 그날 기분 내키는 대로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곳에 들어가는 걸 좋아했어요. 첫날은 제가 짜온 일정대로 움직였는데, 둘째 날 아침에 상대가 "우리 꼭 이렇게 다녀야 해?"라고 물었을 때 살짝 서운했어요. 저는 배려한다고 준비한 건데, 상대한테는 그게 오히려 여행을 숙제처럼 느끼게 만든 거였어요.

평소 데이트할 때는 이 차이가 거의 안 보였어요. 몇 시간짜리 데이트는 어느 쪽 방식이든 맞춰줄 수 있으니까요. 그런데 사흘 내내 함께 있으니 작은 성향 차이가 반복되면서 커졌어요. 하루짜리 데이트에선 안 드러나던 문제가 며칠짜리 여행에서는 매 순간 마주치는 문제가 됐어요.

돈 얘기를 안 하고 떠난 게 화근이었다

숙소비는 반씩 나누기로 미리 정했는데, 식비나 자잘한 지출은 아무 말 없이 각자 편한 대로 냈어요. 처음 한두 번은 웃으면서 "이번엔 내가 낼게" 했는데, 셋째 날쯤 되니 은근히 계산이 되더라고요. 누가 더 많이 냈는지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요. 같이 살기 전에 돈 이야기를 미리 해야 한다는 것을 어디서 읽은 적 있었는데, 여행도 똑같았어요. 며칠짜리 동거나 마찬가지인데 저희는 그 준비를 안 하고 갔던 거예요.

여행에서 돈 문제가 무서운 건 액수가 커서가 아니라, 그 순간에 말을 못 꺼내서 계속 쌓인다는 점이었어요. 5천 원짜리 커피값은 그 자리에서 따지기엔 사소해 보이니까요. 그 사소한 게 하루에 서너 번씩 반복되니까 셋째 날 저녁엔 마음속에 작은 앙금이 꽤 쌓여 있었어요.

산길을 손을 잡고 걸으며 뒤돌아보는 연인의 모습

좁은 방에서 하루 종일 붙어 있다는 것의 진짜 의미

평소엔 각자 집이 있으니 힘들면 헤어져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. 그런데 여행에서는 그게 안 되잖아요. 씻는 순서, 짐 정리 방식, 밤에 불 끄는 시간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다 맞춰야 했어요. 같이 살기 시작한 첫 일 년 동안 부딪혔던 것들이랑 비슷한 마찰이었는데, 저희는 그걸 사흘 만에 압축해서 경험한 셈이었어요.

둘째 날 밤엔 저는 쉬고 싶어서 방에 있고 싶었는데, 상대는 산책을 나가고 싶어 했어요. 예전 같으면 "그럼 나 먼저 집 갈게"라고 하면 됐는데, 같은 방을 써야 하니 어느 한쪽이 참아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. 그날 저는 참고 따라나섰는데, 나중에 보니 그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어요. 참기보다 각자 원하는 걸 솔직히 말하고 조율했어야 했어요.

사진 한 장 때문에 서운해질 수 있다는 것

여행 사진을 누가 언제 올리느냐를 두고도 신경전이 있었어요. 저는 그날그날 SNS에 올리고 싶었는데, 상대는 다녀와서 한꺼번에 정리해서 올리는 편이었어요. 제가 먼저 올린 사진에 상대가 안 보이길래 왜 같이 안 나온 사진만 올렸냐고 물었더니, 그냥 잘 나온 사진을 고른 것뿐이라고 했어요. 별거 아닌 일인데 그 순간엔 서운했어요. SNS를 자꾸 확인하게 되는 불안이 평소에도 있었는데, 여행 중엔 그게 더 예민해지더라고요.

돌아오는 길에 나눈 대화

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참 말이 없다가, 제가 먼저 "우리 이번에 좀 안 맞았던 것 같아"라고 꺼냈어요. 상대도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쌓인 얘기를 했어요. 저는 일정을, 상대는 여유를 원했다는 것, 돈 얘기를 서로 피했다는 것, 사진 문제까지 하나씩 짚었어요. 싸운 뒤에 사과보다 먼저 할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게 도움이 됐어요.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기보다, 각자 뭐가 힘들었는지부터 순서대로 말하니까 대화가 덜 날카로웠어요.

신기했던 건, 여행 자체는 좋은 순간이 더 많았다는 거예요. 그런데 돌아오는 길엔 힘들었던 것만 먼저 떠올랐어요. 그래서 일부러 좋았던 순간도 하나씩 다시 꺼내 말했어요. 안 좋았던 것만 정리하고 끝내면 다음 여행이 겁나는 일이 될 것 같았거든요.

다음 여행부터 저희가 정한 것들

그날 대화 이후로 몇 가지를 정했어요. 큰 결심이라기보다 실용적인 규칙에 가까워요.

  • 일정은 하루 걸러 하나씩만 정한다 — 아침에 꼭 가야 할 곳 한 군데만 정하고, 나머지는 그때그때 정하기로 했어요. 계획과 즉흥, 둘 다 조금씩 포기하니까 오히려 둘 다 편해졌어요.
  • 매일 저녁, 그날 쓴 돈을 짧게 정산한다 — 5분이면 끝나는 일인데, 이걸 안 해서 마지막 날 감정이 상했어요. 이제는 매일 저녁 각자 영수증 보면서 그날 몫만 나누기로 했어요.
  • 각자 혼자 있는 시간을 하루에 한 번은 만든다 — 방에서 낮잠을 자든 산책을 혼자 다녀오든, 붙어 있지 않는 시간을 일부러 넣기로 했어요.
  • 사진은 여행 끝나고 같이 고른다 — 각자 올리지 않고, 돌아와서 마음에 드는 사진 몇 장을 같이 정해서 올리기로 했어요.

창밖 풍경을 함께 바라보며 서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

사귀는 동안 아무리 잘 맞아도, 며칠을 붙어서 지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들이 있더라고요. 그건 안 맞는다는 신호가 아니라, 그냥 아직 안 겪어본 일이었을 뿐이에요. 저희는 그 첫 여행에서 부딪힌 덕분에 두 번째 여행은 훨씬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어요. 첫 여행에서 삐걱거렸다고 실망하지 않아도 돼요. 오히려 그게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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